기본 정보
| 전통사찰명 | 만의사 |
|---|---|
| 사업장명 | 만의사 |
| 영업상태 | 운영중 지정 |
| 도로명주소 | - |
| 지번주소 |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 중동 140 |
| 전화번호 | 0313766005 |
| 시도 | 경기도 |
| 시군구 | 화성시 |
유래 / 연혁
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. 신라 때 창건되어 당시에는 만의사(萬義寺)라 하였다. 1284년(고려 충렬왕 10) 정길(貞吉)과 현묵(玄默)이 중창하였고, 1312년(충선왕 4) 당시 천태종 진구사(珍丘寺) 주지였던 혼기(混其)가 주지로 부임한 뒤 크게 중창하고 법화도량(法華道場)을 열어 천태종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. 그의 뒤를 이어 의선(義璇)이 사세를 더욱 키웠으며, 충혜왕 때의 주지 묘혜(妙慧)는 요원(了圓)이 《법화영험전(法華靈驗傳)》을 간행할 때 비용을 대주었다는 기록이 있다.
고려 말 우왕(재위: 1375∼1388) 때부터는 천태종과 조계종에서 주지를 교대로 맡게 되었다. 이것은 당시 이 절이 사전(寺田)과 노비를 많이 소유하여 부유했기 때문이다. 나라에서는 두 종파간 다툼이 심해지자 노비를 모두 수원부(水原府)에 속하게 하고 절은 천태종이 관할하게 하였다. 1388년(우왕 14) 이성계(李成桂)가 위화도회군을 할 때 공이 컸던 신조(神照)가 주지로 온 뒤부터 다시 노비를 받았으며, 사전 70결도 받았다고 한다. 조선 건국에 공이 큰 까닭에 억불숭유 정책을 편 조선시대에도 비교적 사세를 폈다.
고려 말 우왕(재위: 1375∼1388) 때부터는 천태종과 조계종에서 주지를 교대로 맡게 되었다. 이것은 당시 이 절이 사전(寺田)과 노비를 많이 소유하여 부유했기 때문이다. 나라에서는 두 종파간 다툼이 심해지자 노비를 모두 수원부(水原府)에 속하게 하고 절은 천태종이 관할하게 하였다. 1388년(우왕 14) 이성계(李成桂)가 위화도회군을 할 때 공이 컸던 신조(神照)가 주지로 온 뒤부터 다시 노비를 받았으며, 사전 70결도 받았다고 한다. 조선 건국에 공이 큰 까닭에 억불숭유 정책을 편 조선시대에도 비교적 사세를 폈다.